“삼하 6:15~17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상자 같이 만들어진 궤(=언약궤=법궤=성궤)는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다. 궤는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할 정도로 하나님과 동일시되는 것이었다.@삼하 6:2
우리는 궤의 의미가 행2장의 성령의 강림 이후에 완성되었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각 사람 속에 임재하심으로 과거의 궤의 존재는 그 모형이었다는 것이다.
궤를 모셨으나 소홀히 사람
궤는 여호수아가 죽고 난 뒤 소홀히 모셔졌고 다윗이 나타나기 전까지 회복을 기다라고 있었다.
소홀히 모셔졌다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시지 않았다는 것이요. 둘째는 우상을 섬기듯이 모셨다는 것이다. 사울은 왕이 된 후에도 궤를 모시지 않았다. @삼상 4:3,@삼상 14:18~19
궤를 얽힌 스토리의 정점에서 미갈에게 사용된 “업신여기다”라는 단어가 키워드이다.@삼하 6:16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의미는 그렇지 않다. 미갈의 마음은 이것이다.
“궤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이기에 왕이 저렇게 철부지 어린 아이처럼 기뻐 뛰놀고 있는가?”
사울의 영적 유전자는 지금도 하나님 나라 안에서 유전되고 있다. 우리는 각성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다윗처럼 사모해야 할 것이다.
궤를 사모하였으나 두려워한 사람
우리는 경외심을 경건한 두려움이라고 부른다. 다윗은 궤를 모셔오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에서 이것을 고백한다. 그의 타오르는 분노는 웃사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였다.@삼하 6:8~9
우리가 경외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궤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소홀히 한) 사울이나 그런 사람들은 궤에 대한 경외심이 없었다는 것이고, 궤를 소중히 여긴 다윗은 두려워하였다는 점이다. 둘째는 결과 때문이다. 미갈은 남편과 하나님께 버림받아 무자 하였다고 했고 웃사는 즉사하고 그 가문은 버림받았으며 사울은 아들들과 함께 버림받고 전장에서 처참하게 죽었고 벧세메스 사람들은 몰살했으며 엘리 집안은 멸망을 당하였다. 우리는 이가봇을 기억해야 한다.
@삼상 4:21~22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우리가 모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광이다. 이 여인이 외친 ‘영광(카보드 kabod)’이란 단어는 추상적으로 영예, 영광, 저버림이란 뜻도 있지만 물질적인 풍부, 다량, 다수, 부(富), 부유함이라는 의미도 있다.
궤는 누가 모실 수 있는가?
웃사의 사건으로 당황한 다윗은 도리어 궤를 멀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다윗과 예루살렘을 향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심으로 두려워하는 다윗에게 용기를 주시고 기쁨을 주셨다.
진노 중에라도 하나님을 피해서는 안 된다. 가까이 다가가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미갈처럼 누가 비웃든지 개의치 말라. 그는 그에 따른 대가를 받을 것이다.
궤는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가? 사모하며 경외하는 자이다. 궤 안에는 말씀이 담겨 있고, 그 위 덮개에 피가 발라져 있으며,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다. 오늘 내게 우리 교회에 이 거룩한 영광의 임재가 기득하도록 하나님을 사모하며 경외하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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