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20:26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있다. 풍요로운줄 알았지만, 사실은 빈털터리 같은 모습을 보면서 주로 이런 말을 하게 되는데,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볼 때 풍요속의 빈곤과도 같은 모습임을 알게 된다.
거룩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결정되는 은혜이다
우리는 거룩하다는 말을 매우 신성해 보이는 의미로 생각한다. 물론 하나님께 거룩하다는 단어가 사용 될 때에는 하나님의 신성함을 의미하는 것이 맞지만, 인간에게 거룩하다는 말이 사용될 때는 그런 신성한 모습보다는 오히려 신성하지 않은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구별하셨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우리들에게 이 거룩이라는 단어는 은혜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내 소유로 구별할 때를 생각해보면, 마트에서 좋은 것만 구별해서 가져오려고 하듯, 가장 좋은 것을 나의 것으로 구별하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 관점에서의 거룩이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런 관점으로 부르지 않으셨다.
도망자였던 다윗을 따르려고 아둘람굴에 모였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봐도 이러한 원리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유능한 사람들이 아닌 불쌍한 사람들을 구별하여 부르고 계시며, 이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거룩히 구별한 백성들에게 거룩하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돌아온 탕자에게 새 옷을 입혀주었던 아버지처럼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다운 삶을 살라 하신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한 삶에 대해서 생각할 때 불쌍한 모습의 우리들에게 베풀어진 은혜가 중심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만 한다.
거룩히 살아야 할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된다
@시139:17-18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편의 기자는 하나님께서 가진 수가 무한하심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앞날을 모르는 연약한 존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앞날을 가지고 계신 주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게 될 때 무한한 수를 가지신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을 향한 담대함을 얻게되고 이 힘이 세상에 휩쓸려가는 삶이 아닌 구별된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은혜를 잊어버릴 때 거룩함을 잃어간다
우리가 은혜를 잊어버리고 거룩함을 잃어가게 되는 이유는 나의 부족함을 잊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지만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오늘날 풍요속의 빈곤과도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주시고 싶으신 메시지는 무엇일까?
저들은 삶을 버리면서까지 하나님을 주인이라 고백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우리들을 보시면서 “너의 삶에서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이 질문을 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봐야만 할 것이다.
은혜의 자리를 회복하라
아마도 많은 이들이 “누가 삶에서의 주인인가”라는 질문 앞에 나의 주인된 속성을 바라보면서 넘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렇게 넘어진 내 모습이 나의 가장 불쌍한 모습이라는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불쌍한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이 은혜다.
하지만 그런 은혜 이후부터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베드로와 가룟유다는 모두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들이었으나 둘의 결말은 달랐다. 그것은 내 죄가 크지만 하나남의 은혜는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았냐 몰랐냐의 차이일 것이고, 그 은혜는 우리가 거룩히 살아갈 힘을 공급해 줄 것이다. 이런 삶의 과정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고 살 수 있게 된다.
@롬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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