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0:1-8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었고 그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한복음과 사도행전부터의 성경은 성령에 대해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고 사실상 이해를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령을 받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을 따라 살려면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의 뜻을 이해하는 감각이 발달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음
고넬료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과정이 매우 특별한 이유는 그가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직 믿음도 없고, 유대교 신앙에 대해서도 깊지 않은 고넬료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다. 고넬료의 작은 신앙에는 큰 장점은 그가 순수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는 참 신앙의 핵심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시기에 베드로에게도 계시를 하셨는데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계시하실 때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두 사람의 특징은 그들의 이성과 지성을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보았다는 것이다.
영으로 분별함
고넬료와 달리 베드로는 환상을 보고 매우 혼란스러워 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보여주셨는데도 말이다. 반면에 고넬료는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즉시 순종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왜일까?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으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일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베드로는 하나님의 계시를 생각하는 중에 의심이 들었다. 이 단어는 ‘깊이 숙고했다’는 뜻이다. 보라.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의심하게 되었다는 것.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 도리어 의심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가진 종교적 배경, 그의 교리와 관습, 그의 생각은 성령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에 방해가 되며 이런 방식으로는 분별할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성령에 감동되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을 따라,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영을 훈련함
그러면 어떻게 분별하고 어떻게 이해할까?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다 그 목적과 기능이 있게 하셨고 만물은 쓸모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는 영적 기관인 ‘영’을 두셨다. 우리는 영으로 그 분을 감각하며, 그의 계시를 분별한다.
하나님께서 고넬료과 베드로에게 계시하실 때, 그들의 이성과 지성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하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 영을 건강하게 하고, 훈련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앞으로 있게 되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고넬료와 베드로의 경우와 같이 우리를 성령의 사람, 성령에 속한 자가 되게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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