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5:15~17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직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사람의 영을 분별함
사마리아에서 있었던 일화를 보라.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대하실 때 어떤 영이 있는지 분별하셨다.
@KJV눅9:55~56 주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가 어떤 영(프뉴마)을 지녔는지 알지 못하고 있도다 인자는 사람들의 생명(프쉬케)을 멸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고 왔느니라”고 하시고 일행과 더불어 다른 마을로 가시더라
이런 일은 베드로에게도 있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베드로는 앞서 신앙고백을 통하여 주님의 칭찬을 들었다.@마 16:13~19
그러나 이내 베드로는 책망을 받는다. 이 장면에서도 주님은 영을 분별함으로 말씀하셨다.
@마 16:21~24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도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분별함
@빌 3:2~4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여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그들은 왜 몸을 상해하였는가?종교적 열심 으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음을 여러분은 알 것이다.
(※일분설,이분설,삼분설의 이해)
영을 분석하고 분별하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육체(혼+육)를 신뢰한다. 교회 안에서의 많은 일들(사역)은 한 영역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오직 성령께서 어떻게 이끄시는지에 집중하고 몰두해야 한다. 주님께서 사역하실 때,회중들이나 제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으셨음을 볼 수 있다. 주님은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만을 따라 일하셨다.@요 5:19
더욱이 주님은 사역자에게는 따로 먹을 양식이 있음을 말씀하셨다.@요 4:32
주님은 사역자로서 사람에 대하여 잘 알고 계셨기에(영 분별), 사람을 의존하지 않으셨던 것이다.@요 2:24~25
육신에 속한 자를 분별함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도”와 “육신에 속한 자”의 대조를 보여주셨다. 이는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조한 것 이며, 그런 성도들을 분별하는 것이다. 교회 내에서 분파가 생긴 것에 대하여 그는 이 십자가의 도로 대응한 것이다.@고전 1:18~24
교회 내부에서도 세상의 가치로 사람을 분별함이다. 인텔리들(지식인들)나 능력자들이 모이는 교회가 따로 있다. 그러나 바울의 교회들은 그 반대였다.@고전 1:26~29
영적 체험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신령해지는 것은 아니다. 죄와 자아의 체험이 없을 때 비로소 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지정의가 강한 사람일수록 성령께 굴복하기 힘들다. 자신이 수긍하고 허락할 때에야 비로소 성령께 순종하니 성경은 그것을 순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은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사역에서도 점차로 본질에서 벗어난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은 쳐서 사용한다. 사실상 대부분의 성도가 혼에 속하기가 일반이다. 야곱과 같은 사람이라 하겠다. 영에 속한 일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나온다. 분별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람을 볼 때, 육신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특히나 성도를 볼 때 그러하다. 우리는 분파에 속한 자들도 아니요, 남을 정죄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직 내 앞에 가시는 주님을 따라 갈 따름이다. 내게는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 관심을 둘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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