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5: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롬 12:12~14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상처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
먼저 확인할 것은 사람이 함께 사는 곳에는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믿어지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받은 상처는 일평생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은 상처의 경우, 세월이 흐른 후에 씁쓸한 마음으로 남는다. 상처가 클수록 아직도 눈물이 나거나, 여전히 아픈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그 상처로 인하여 자신의 인생을 망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잘잘못을 따지고, 시시비비를 따져도 상처 받은 사람이 치유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을 믿고 따른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셨다. 오늘날 많은 순교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하여 주님은 눈에 띄는 확연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이미 요한계시록에 약속하신 바 있다. 그 날에 비로소 내 눈물을 씻어(닦아) 주신다고 하셨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그날까지 견딜 수 있는 방안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교회이며 교회는 이 사역을 해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교회
상처에 얽매여 자기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 막대한 지장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치유집회, 치유세미나, 치유상담과 같은 여러 종류의 치유사역들이다. 실제로 참여한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치유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여전히 상처가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치유사역은 상처를 치유함이 아니라 위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상처 받은 자를 (치유하라 하시지 않고) 위로하라고 하셨다.@사 40:1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거나 순교한 사람들로 인해 슬퍼하는 성도들에게 바울 사도는 부활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하는 것이다.@살전 4:18
치유사역은 그 상처에 이용 당하지(지배 받지) 않게 함이 목적이다. 상처를 이용하는 마귀를 쫒는 것이요,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 용납 하는 것이다. 마귀를 대적하고, 사람은 멀리하라
상처를 위로하는 목장
당신이 아무리 경험 많은 목자라 해도 사람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혼사역은 늘 하던 대로 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때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고 했다. @사 50:4
소그룹으로 모이는 목장을 치유(위로)의 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목자들이 한 영혼을 세심히 살피고, 목원들이 협조해 주어야 한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위로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주님 역시 우리를 묶어 주셨고 함께 있으라고 하셨다.@요 10:16
어떻게 위로할까?
우리 교회와 목장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교회나 우리 목장은 나의 상처를 위로받는 곳이라는 느낌을 가지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교회는 아픔과 슬픔의 공동체이다. 우리는 신앙을 가지기 전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신앙을 가진 후에도 상처를 받는다. 우리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으로서 서로를 보듬어야 할 것이다. 목장은 ‘내가 말하는 곳’이 아니라 ‘들어주고 공감하는 곳’이라고 여기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모임. 들어주기 위해 모이는 곳으로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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