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 역사에도 다윗 같은 리더는 드물다. 왜 이스라엘은 다윗을 따르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에 (영적인 의미에서) 두 나라가 존재함을 우리는 보고 있다. 우리는 교회 안에도 두 나라가 존재함을 비유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진영에 속해있는 사람인지 분별하고, 각자의 신앙을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세우자.
이스라엘 안의 두 진영
사울이 죽은 후에 아브넬의 말을 통해 우리는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삼하3:8~11
아브넬은 누구인가? 그는 이제껏 사울을 왕으로 섬긴 군사령관이 아닌가?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뜻이 다윗에게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도 버젓이 사울을 보좌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일까?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신의 야망과 권력을 누리기 위하여 그렇게 하고 있었다. 유다 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를 보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 @대상 11:1~3, @삼하 19:9~10
우리는 초대 교회 시대에도 두 진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를 좌우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음이다. 또한 바울의 사도성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이 교회에 존재하고 있음을 통해서이다. @고전 9:1~2,@갈 2:4,11~12
역사 속에 숨겨진 교회의 두 진영
우리는 기독교가 로마시대를 거쳐 유럽에 먼저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대교의 전통과 성경을 잘 알지 못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때, 극명하게 두 진영으로 나누이게 된다. 자신들의 종교나 가치관 속에 기독교를 결합시키는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였다.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백인들이 유색인종들을 향해 저지른 많은 악행들은 그들의 과오를 보여준다. 이런 일들을 접하게 될 때, 우리 신앙과 기독교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도리어 교회 안에 두 진영이 있음을 알고, 스스로의 믿음을 잘 지켜야 한다.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이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로마 가톨릭 시대의 종교인들의 십자군 운동과 같은 부류의 만행들과 그와 유사한 역사들이 기독교를 피로 물들게 하였다. 세계 대전 때에는 기독교 국가들의 전쟁이었다. 우리는 유럽에서 세계로 기독교를 전파한 선교사들은 이와는 달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순수한 복음을 성경대로 전하였으며, 열악한 복음의 현장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고생하며 가족들을 희생시키며 사역하였다. 선교사들이 보여준 신앙의 진심을 공부하고 마음에 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위하는 자기 의(義)
아브넬 장군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그러나 속 마음은 하나님이나 이스라엘이나 상대방(다윗)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그는 수치심과 분노 속에서 자신을 위하여 나선 것이었다.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는 말과 같이 아브넬은 요압의 손에 죽게 된다. 유다 지파 역시 자신들을 위하여 사울을 왕으로 섬겼다. ‘자기 의(義)’의 전형은 자기를 위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은 끝까지 주의 길을 가지 못한다.
여러분은 어떤 진영에 속할 것인가! 다윗의 집은 지금도 면면히 그 맥을 유지하며,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다. 다윗은 이 모든 일을 겪었고, 알면서도 그들과 언약을 맺고 보복하지 않고 순순히 즉위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함이요, 나라를 위함이요, 그들을 위함이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이다.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은 사울의 집에 속한 사람들처럼 하지 말고, 다윗의 집에 속하여 다윗의 신앙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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