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헌신하는 사람
먼저 우리는 ‘헌신’이라는 단어를 정의해야 한다. 한자어로는 ‘몸을 드린다, 몸을 바친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몸과 마음을 바쳐 힘을 다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가 ‘헌신적인 사람’이라는 말
을 쓸 때, 이런 의미로 사용한다. 성경에서의 ‘헌신’ 역시 다르지 않다.
좀더 첨언하자면, 성경에는 ‘헌신’이라는 단어가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의미는 주님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즐겁게 (무엇을) 하다’라는 뜻이다.
@시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네다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자기를 부인하는 제자도와 헌신은 어떤 상관이 있는가? 자기를 부인하려는 사람은 주님께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께 자신을 드리지 않는 사람은 자기 부인의 과정을 시작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말함이다.
주님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억지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는데 인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을 주신 이유를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에는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기꺼이, 즐겁게 헌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받으셨다.
통치를 받는 사람
주님께 헌신하려는 사람은 이제 그 분의 통치를 받게 되는데 헌신은 우리쪽에서의 방향이고, 통치는 주님쪽에서의 방향이다. 사실상 헌신과 통치는 다른 것이 아니므로 헌신된 사람은 비로소 그 분의 통치를 받게 된다.
보편적인 통치는 헌신되지 않은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모든 만물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통치는~ 제한적인 통치를 말하며, 주님께 헌신하려는 사람에게 특별한 통치를 행하신다는 것을 말함이다.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사람은 그분의 특별한 통치를 받게 되고, 이 통치를 통하여 우리는 좋은 제자,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즉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경험하는 사람
시험, 시련, 고난에도 보편적인 것과 제한적(특별한)인 것이 있다. 주께 헌신하지 못한 사람은 보편적인 고난도 견디지 못하여 주님께 실망한다. 그러나 헌신된 사람에게는 특별한 시험이 일어나는데, 그는 그것을 이겨내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헌신하며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셨다. 그때 어떻게 시험을 이기셨는가? 말씀을 통해 이겨내셨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다.
오직 성령의 인도만이 시험을 통과하게 한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장성한 사람은 “말씀을 경험한 자”이다. 단지 공부한 자가 아니다. 히5장의 그리스도의 고난과 순종을 묵상하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고난을 통과하셨다. 그 과정에서 순종을 배우셨고, 이는 우리에게 모범이 된다. 순종을 배우셨다는 말은 그분이 순종을 경험하셨다는 뜻이다. 우리 역시 말씀을 머리로 배우고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배우고, 그리하여 장성한 사람,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히5:6-10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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